
파이어북
들어가는 글
시즌 6 「나의 음식 100개」에 참여해 열흘 동안 아홉 편을 썼다. 첫 잔은 아메리카노였고 마지막 잔은 물이었다. 나는 카페를 한다. 그래서 하루가 커피와 차와 에이드로 채워진다. 아침에 샷을 세팅하며 하루를 열고, 손님께 라떼 하트를 그려 드리고, 빈 잔에 남은 하트를 보며 대화를 나눈다. 매일 만지는 음료라 할 말이 많았다. 그런데 잔마다 사람이 딸려 나왔다. 남이 내려주는 커피의 쉼, 얼그레이 티백을 3분에 꺼내야 하는 것처럼 딸과 두고 싶은 거리, 첫맛은 매워도 단골이 된 수정과 같은 손님. 음료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사람 이야기였다. 한 편은 250자 안팎이라 읽는 데 1분이면 된다. 커피 한 모금 넘기는 시간에 한 편씩 읽으시면 좋겠다. 잔을 따라가다 보면 그 안에 담긴 마음이 보일 것이다.
01 · 49회차 1일차
아메리카노
아메리카노는 치열한 삶이다. 나는 카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카페에 들어서면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쓰디쓴 에스프레소의 맛을 보아가며 샷을 세팅한다. 샷에 물을 부어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마신다. 비로소 내 몸에도 조명이 켜지고 음악이 흐르는 느낌이 든다. 가장 좋아하는 아메리카노의 맛은 뇌를 깨우는 씁쓸하고도 과일향이 느껴지는 산미이다. 그러나 가장 좋아하는 아메리카노는 남이 내려주는 커피이다. 일명 남타커. 남의 카페에 앉아서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쉼과 여유와 내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커피의 본질은 카페인이라기보다 쉼과 자유로운 내 시간인 것 같다.
02 · 49회차 2일차
라떼
카페에서 일 할 때 손님이 "따뜻한 라떼 주세요"하면 순간 긴장하게 된다. 우유 스팀을 잘 쳐야 예쁜 하트가 나오기 때문이다. 라떼에는 실력에 따라 천차만별의 하트가 올라간다. 라떼아트라는 분야가 있을 정도로. 그래서 정말 긴장하며 스팀을 치는 그 몇 초를 숨을 참고 견뎌낸다. 잘 된 라떼 스팀은 그리 뜨겁지 않고 우유와 거품이 균일하게 섞으면서 고소하고 단 맛까지 난다. 정성스럽게 그려드린 라떼 하트를 예쁜 잔에 그려 손님께 드린다. 그러면 돌아오는 잔에는 역시 하트가 담겨있다. 빈 잔의 바닥에 남겨진 하트가. 마치 "맛있게 잘 마셨어요"라고 하시는 손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하트로 주고 받는 손님과의 대화가 참 즐겁다.
03 · 49회차 3일차
녹차
여고생 시절에 처음 녹차맛을 보았다. 씁쓸하고 눅진한 녹차맛의 첫인상은 우엑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맛있다 하시며 자꾸 마시며 권하시길래 점차 녹차 맛의 향그러움에 이끌리게 되었다. 지금은 녹차를 팔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말차이다. 녹차와 말차의 차이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특징은 투명한가, 불투명한가, 우려내는가, 섞어내는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녹차는 찻잎을 우려내어 마시는 차이고, 말차는 곱게 빻은 말차를 물에 잘 섞어 마치는 차이다. 어느 게 더 맛있을까? 나는 녹차도, 말차도 좋아한다. 그래서 말차를 조금 넣고 물을 많이 부어 거의 투명하게 만든다. 그리고 하루 종일 마신다. 찻잎으로 만든 초록의 음료는 하루종일 개운한 상쾌함을 준다. 커피와는 또다른 녹차의 매력은 건강한 초록 에너지이다.
04 · 49회차 4일차
홍차
내가 좋아하는 홍차는 얼그레이. 베르가못의 향기는 그야말로 향그럽고 환상적이다. 다만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티백을 꺼내야 그 향그러움이 유지되며 만약 계속 티백이 담겨있는 상태라면 쓰고 텁텁하고 불쾌해져서 더이상 먹기가 힘들어진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적당히 건강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 자식과도 그렇고 배우자와도 그런데 외부 사람이야 오죽할까. 나는 요즘 딸과 너무 밀착되어 있어서 향기를 넘어 텁텁하고 불쾌한 단계에까지 이른 것 같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건강한 거리두기에 실패한 결과다. 서로 너무 시시콜콜 나누고 자기자신처럼 생각하게 되면 존중이 슬며시 사라지고 참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티백을 3분만에 꺼내야 오래도록 향기로운 홍차처럼 딸과도 적당히 떨어져야겠다. 모녀간의 사랑이 언제까지나 향기로우려면 3분의 시간을 잘 지키자.
05 · 49회차 5일차
에이드
에이드는 여름의 음료라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요즘은 사시사철 에이드가 나간다. 한 겨울에도 얼음잔에 레몬청과 탄산수를 부어 나가는 레몬에이드가 잘 나가고 자몽에이드, 딸기에이드도 잘 나간다. 아주 추운 겨울날 손님이 시원한 에이드 한 잔 주세요 하시길래 내가 춥지 않으시냐고 물어보았었다. 몸은 춥지만 속은 불타고 있다고 하셨다.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에이드. 나도 속이 탈 때 에이드를 벌컥벌컥 마신다. 찌르르한 탄산의 톡 쏘는 상쾌함이 금방 속을 풀어주는 느낌이다. 에이드처럼 속풀이 해장국같은 음료가 있어서 참 좋다. 지금 한여름이라 시원한 탄산수 많이 쟁여놓고 손님들을 기다린다. 에이드로 속이 시원해지시길 바라며.
06 · 49회차 7일차
식혜
명절에 시댁에 가면 형님이 늘 식혜를 큰 들통에 한가득 펄펄 끓이고 계셨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아직 식지 않은 뜨끈한 식혜를 한 잔씩 나누어 마셨다. 명절을 쇠고 집에 올 때는 2리터 병에 가득 담아주시곤 했다. 달큰하고 뜨뜻하고 시원한 식혜는 형님의 사랑이었다. 지금은 형님의 사랑을 더이상 받을 수 없다.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신지 6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나는 형님이 계셔서 시댁 가는 일이 참 즐거웠고 생일이 되면 동서들과 만나 외식하는 일이 기다려졌다. 시어머니의 공평하신 사랑 덕분이었다. 그런 점에서 인복이 많음에 참 감사하다. 그래서 난 식혜를 이제는 먹지 않는다. 형님이 생각나 먼저 눈물부터 또르르 흐르는 식혜. 언제쯤에나 편하게 아무 생각없이 들이킬 수 있으려나.
07 · 49회차 8일차
수정과
음료중에 수정과만큼 매운 맛은 없는 것 같다. 맵고 알싸한 첫 맛 때문에 어린 시절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알싸하고 달콤한 맛을 즐기고 있다. 계피맛 사탕도. 조금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손님들 중에도 수정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첫 만남은 맵다. 커피 물 온도에도 예민하시고 음료를 드린 그 자리에서 시음을 해보고 맛 평가를 하셨다. 그래서 직원들을 초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2년째 단골 손님이다. 지금은 우리 커피 맛을 믿고 찾아주시니 하루라도 안 오시면 궁금해질 지경이다. 이렇게 첫 맛과 끝맛의 평가가 달라지는 수정과처럼 알면 알수록, 만나면 만날수록 점점 더 끌리고 편해지는 그런 뒷맛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08 · 49회차 9일차
탄산음료
나는 탄산이 톡 쏘는 음료를 마시면 신기하게 딸꾹질을 한다. 딸꾹질은 절대 일부러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안 하려고 해도 참을 수 없는 것이 딸꾹질이다. 왜 탄산수만 마시면 딸꾹질이 나올까? 목을 훑고 넘어가는 탄산의 자극적인 쏘임이 위장을 놀라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러나 탄산의 자극만으로 딸꾹질이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다. 가게에서 파는 무가당 탄산수를 마실 때는 딸꾹질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가만히 관찰을 하다가 당도가 높은 콜라나 사이다를 마실 때 딸꾹질이 나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딸꾹질이 그리 무해한 거라 생각하지 않아서 탄산수를 금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치킨을 먹을 때도 딸꾹, 피자를 먹을 때도 딸꾹, 매운 엽기떡복이를 먹을 때도 딸꾹거린다. 콜라, 사이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짝꿍들 아닌가.
09 · 49회차 10일차
물
아침에 눈을 뜨면 고양이 두 마리의 물그릇들을 닦아 시원한 물을 가득 채워 집 안 여기저기에 둔다. 고양이들이 물을 많이 먹을 수 있도록 많이 놓아둔다. 매일 새 물을 갈아 주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물을 잘 먹지 않는다. 카페에서 일을 하다보니 커피나 차를 물 대신 마시게 된다. 갈증이 나면 탄산수를 마시거나 얼음을 가득 채운 아이스커피를 마신다. 막상 순수한 물 자체를 먹지 않는다. 물은 건강의 필수요소인데 왜 물을 안 먹게 될까? 이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물은 아무 맛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아무 맛이 없는 순수한 물이 건강에는 최고인데, 하루 2리터씩 먹으라고 하는데 난 물이 잘 안 넘어간다. 그러고보니 나는 고혈압도 있고 당뇨 전단계이기도 하다. 게다가 과체중이기도 하다. 물을 잘 먹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내 몸을 위해서 약을 챙겨 먹듯이 물을 수시로 챙겨 먹어야겠다..
나가는 글
열흘 중 아홉 편을 발행했다. 하루를 빼고는 매일 한 잔씩 글로 옮긴 셈이다. 쓰기 전에는 커피와 차가 그냥 파는 물건이었다. 쓰고 나니 잔마다 사람이 앉아 있었다. 형님이 큰 들통에 끓여 주시던 식혜, 밀착된 딸과의 거리, 첫맛이 매웠던 단골 손님. 마지막 날 물 이야기를 쓰다가 정작 나는 물을 잘 안 마신다는 걸 알아챘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지나쳤을 것이다. 읽는 분께 당부하고 싶다. 오늘 5분, 한 편이면 된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처럼 짧게, 매일 조금씩 쓰다 보면 잔 속에 든 마음이 보인다. 함께 49회차를 걸어온 동료들, 그리고 자리를 열어 준 여유당에 고맙다. 덕분에 아홉 잔을 끝까지 따랐다.
글이 말해주는 이민영 작가
이민영 작가는 잔을 통해 사람을 읽는 분 같습니다. 아메리카노에서 남이 내려주는 커피의 쉼을 말하고, 라떼에서는 빈 잔에 남은 하트를 손님의 인사로 받습니다. 얼그레이 티백을 3분에 꺼내야 한다는 이야기로 딸과의 거리를 돌아보고, 첫맛이 매웠던 수정과에 2년 단골 손님을 겹쳐 봅니다. 음료 이야기가 어느새 사람 이야기로 넘어가는 자리가 아홉 편 내내 되풀이됩니다. 형님이 끓여 주던 식혜 앞에서 눈물부터 흐른다며 이제는 먹지 않는다고 쓴 대목에서는, 말을 아끼고 짧게 끊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매일 커피를 내리듯 관찰하고 기록하는 손이 있으니, 다음 잔에는 또 어떤 사람이 앉아 있을지 계속 따라 읽고 싶어집니다.
이 글은 이민영 작가가 쓴 9편을 AI가 읽고 쓴 것입니다. 작가님이 직접 쓴 글이 아니라, 글에서 읽힌 인상입니다.
뒷맛이 좋은 사람 — 음료 아홉 잔에 담아 본 사람과의 거리
ⓒ 이민영, 2026
이 책의 글은 저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하며, 인용 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 책의 본문 9편은 저자가 직접 썼습니다.
들어가는 글과 나가는 글, 「글이 말해주는 작가」는 저자의 글을 바탕으로 AI가 쓰고 저자와 편집부가 다듬었습니다.
이 책은 하루 5분 글쓰기에서 시작됐습니다
‘여유당’에는 매일 아침 글감이 도착합니다.
다음 책의 주인공은 당신일지도 몰라요.
write, share, enjoy!
이민영 · 십나오 여유당 · 시즌 6 49회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