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어북
들어가는 글
시즌 6 「나의 음식 100개」를 쓰며 열흘 동안 여덟 편을 발행했다. 시작은 빵 하나였다. 학교 앞 리치몬드 빵집의 밤식빵, 그 묵직한 무게를 느끼며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가던 거리에서부터 이야기가 열린다. 빵을 하나씩 떠올리다 보니 빵만 떠오르는 게 아니었다. 조별 과제를 하러 간 친구네 식탁의 바게트, 대학생이 되어 처음 맛본 뉴욕의 베이글, 남동생이 좋아하던 소보로빵이 함께 따라왔다. 이 책은 빵을 빌려 지나온 시간을 더듬는 글이다. 크림빵을 좋아하던 아이가 김치 없이도 맛있는 빵의 세계를 알게 되고, 이제 곧 어르신이라 불릴 나이를 헤아리는 이야기다. 한 편은 250자 안팎이라 읽는 데 1분이면 된다. 한 편씩 읽다 보면 각자의 빵 하나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빵 냄새를 따라 천천히 걸어 보시길 권한다.
01 · 50회차 1일차
식빵
학교 앞에 리치몬드라는 빵집이 있었다. 엄청난 빵 맛집이었다. 모든 빵이 맛있었고 기본 빵도 하나같이 맛있었다. 나는 그 중 밤식빵을 좋아했다. 이전까지 먹어본 밤식빵은 빵 사이에 박힌 밤을 찾으려면 식빵 속을 한참 헤집어야 했던 것과 달리 리치몬드 빵집의 밤식빵은 달달하고 실한 밤이 그야말로 꽉 차 있었다. 재료를 아끼지 않은 빵이었다. 풍요의 맛이라고 해야할까..? 그만큼 값도 비쌌다. 당시 보통 빵집 식빵이 1000원~1200정도 했던것에 비해 리치몬드의 밤식빵은 3500원쯤 했던 것 같다. 여러모로 묵직한 빵이었다. 빵을 사오면 처음에는 맛만 보겠다고 먹기 시작했다가 결국 식빵 가운데 큰 동굴을 반대편 끝까지 뚫어 놓아야 멈추곤 했다. 리치몬드 빵집은 이전했고, 낮은 건물 있던 거리엔 지금 대형 빌딩과 새로운 상점들이 들어와 있다. 내가 밤식빵의 무게를 느끼며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가곤 했던 학교 앞 거리가 종종 그립다.
02 · 50회차 2일차
바게트
처음 보는 빵이었다. 크림이나 앙금이 없으면서 그렇다고 식빵도 아닌 기다란 모양의 빵.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라는 이름으로 바뀐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내가 이제 막 초등학교 5학년 새 학기를 맞이했을 무렵이었다. 조별 과제를 하기 위해 같은 반 친구 집에 갔을 때 그 집 식탁에서 바게트를 처음 보았다. 우리는 반에서 제법 공부를 잘하는 여학생, 남학생으로 여겨져 담임선생님이 대표로 내준 과제를 하게 된 터였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키가 컸던 그 친구는 자기 엄마가 교수라고 반 아이들에게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걔가 부잣집 아들이라고도 했다. 식탁의 빵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그 친구는 주로 자기 할머니가 드시는건데 버터를 발라 먹는 것이라고 했다. 대체 어떤 할머니가 빵과 버터를 즐기는 것일까? 드라마에서 본 우아한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날 무슨 과목의 숙제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번도 본 적 없는 고고한 할머니가 내가 속할 수 없는 드라마에서 바게트에 버터를 바르는 장면이 생각 날 뿐이다.
03 · 50회차 3일차
베이글
어릴 적 부모님이 가끔씩 동네 제과점에서 빵을 사 오셨다. 나는 주로 크림빵과 흰 앙금으로 만든 상투과자를 좋아했다. 그것들은 달콤하고 폭신한 구름 같은 맛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빵을 먹고 나면 종종 김치를 찾으며 미국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느끼한 것만 먹고살 수 있는지를 의아해했다. 우리는 빵은 다 이런 건 줄 알았다. 대학생이 되어 처음 갔던 뉴욕, 번화한 맨해튼 상점가 사이에 평범한 빵집이 보였다. 작은 가게 안에 종류를 헤아리기 벅찰 만큼 다양한 베이글이 전시되어 있었고 비좁은 실내로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어와서 베이글을 주문해 갔다. 나도 한참을 기다려 아랍계로 보이는 직원이 건네준 따뜻한 베이글을 맛보았다. 입안에 꽉 차는 쫄깃한 질감. 씹을수록 깊어지는 짠맛의 풍미. 이런 빵이라면 매일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다른 세계를 맛본 것일지도 모른다. 김치를 찾지 않아도 되는, 내가 알던 것과 다른 세계가 있다고.
04 · 50회차 4일차
단팥빵
나의 방을 청소하며 단팥빵을 떠올려 본다. 단팥빵은 주로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빵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단팥빵을 좋아했고 지금도 국산 팥으로 달지 않게 만든 단팥빵을 일부러 찾아 사 먹기도 할 만큼 좋아한다. 폭신한 빵에 정성껏 끓여낸 팥소를 넣고,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구워진 둥그런 빵. 그 빵은 익숙해서 다정하다. 정갈하게 정돈된 오래된 집처럼 언제든 따뜻하게 나를 환영해 줄 것 같다. 오래되고 평범해서 몰랐던 다정한 것들이 또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 본다. 나도 이제 곧 있으면 어르신이라 불릴 나이가 된다. 나의 마음이 깊어져 오래 곁에 있어 준 것들의 다정함을 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05 · 50회차 5일차
소보로빵
내가 기억하는 80년대 빵집의 주요 라인업은 크림, 슈크림, 통단팥, 생도나스, 곰보빵이다. 당시엔 곰보빵이라고 불렸던 소보로빵은 남동생이 좋아하던 빵이었다. 나는 타원형으로 길쭉한 모양에 하얀 버터크림이 채워진 크림빵이나 모서리가 동글동글한 삼각형에 노란 크림이 들어 있는 슈크림 빵을 좋아했다. 내가 고른 빵은 둘 다 폭신폭신하고 안에 크림이 들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소보로 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쿠키 같은 껍질이 맛있긴 하지만 내가 빵에 기대하는 질감이 아니었고 달달한 소보로 표면을 다 발라 먹고 나면 남은 빵은 늘 퍽퍽하고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남동생과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내상의 이유는 깊지만 오늘은 소보로와 크림의 거리만큼이라고 해두자. +_+
06 · 50회차 6일차
모닝빵
밥을 다 먹고도 속이 허전하다. 동그란 모닝빵 하나를 전자렌지에 살짝 데우면 원래 질감보다 훨씬 촉촉하고 보드라워진다. 크기도 아담한데다 살짝 데워서 더 퐁신해진 빵은 한두 번 베어 먹으면 금세 사라지고 만다. 보통 모닝빵은 한 봉지에 여러 개가 들어있기에 한 개쯤은 더 먹어도 될 것 같다. 두 번째 행복도 너무 빨리 사라져 버린다. 세 번은 과한데 싶다가 아직 남은 분량이 많으니 이 즐거움을 한 번쯤 더 허락해도 될 것 같다. 작고 동그란 모닝빵이 세 개 네 개 차례로 데워지고 빵을 담았던 봉지가 어느새 가벼워진 것에 놀란다. 나는 남은 빵 봉지를 통째로 냉동실에 넣어버린다. 빵도 나의 행복도 잠시 빙하기다.
07 · 50회차 7일차
찐빵
찐빵은 '빵'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애매한 구석이 있다. 보통 빵은 밀가루 반죽을 오븐에 구워내면서 먹음직스러운 갈색을 띠고, 다양한 질감으로 구워진 겉껍질에선 고소한 향이 난다. 이에 비해 찐빵은 말 그대로 수증기로 쪄낸 것이기 때문에 구운 빵이 내는 그 매력적인 질감과 향이 빠져 있다. 나에게 찐빵은 차라리 쫀득한 떡에 가깝다. 내가 아주 어린아이였을 때 본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빵은 인간이 만든 과일"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까지 그 표현을 잊은 적이 없는 걸 보면 '빵=과일'이라는 낯선 비유가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오랜 시간 진화해 온 자연의 결실 과일처럼, 수천 년 혹은 그 이상을 인간과 함께 진화해 온 빵이 마치 하나의 '종'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 보니 빵에 '껍질'이 있다는 점에서도 과일과 제법 닮아있다. 이제 껍질이 없는 찐빵은 어느 종으로 분류할지.. 고민이다.
08 · 50회차 10일차
샌드위치
샌드위치를 받아 들 때면 언제나 공항 카페가 떠오른다. 돈은 없고 체력은 많았던 배낭여행객 시절, 나는 싼 비행기표를 구하느라 종종 스탑오버 표를 사곤 했다. 몇몇 국가를 거쳐 목적지에 가는 거라 표값이 쌌다. 경유지에서 몇시간쯤은 낯선 도시에 대한 호기심으로 금방 지나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 체류시간이 매우 길어서 공항의자에서 한밤을 자고 일어나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밤새 불편한 의자에서 뒤척인 후 닫혀있던 공항 상점들이 다시 문을 열기 시작할 즈음이 되면 나는 평소보다 더 배가 고팠다. 쭈글쭈글해진 모양새로 커피향이 퍼지는 카페로 가봤다. 진열대에는 두툼한 치아바타에 서양식 치즈가 들어간 신선한 샌드위치가 가득했다. 얇은 식빵사이에 햄치즈나 사라다가 들어간, 한국에서 보던 샌드위치와 사뭇 달라보였다. 그 맛이 궁금하지만, '곧 비행기를 타면 기내식이 나오는데, 비싼 샌드위치를 사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결국 사지 않았다. 요즘 회사 조식으로 제법 잘 만들어진 샌드위치가 매일 나온다. 이제 나는 샌드위치와 커피쯤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는 어른이 된 것일까? 그곳이 물가가 비싼 어느 타국의 공항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직 아닌 것 같다.
나가는 글
열흘 중 여덟 편을 발행했다. 식빵으로 시작해 샌드위치로 닫았다. 처음엔 빵 맛을 적을 생각이었는데, 쓰다 보니 빵 뒤에 있던 거리와 사람과 시절이 자꾸 따라 나왔다. 쓰기 전에는 그저 좋아하는 빵이었다. 쓰고 나니 오래되고 평범해서 몰랐던 다정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팥빵처럼 익숙해서 다정한 것들 말이다. 마음이 깊어져 오래 곁에 있어 준 것들의 다정함을 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적었는데, 쓰는 동안 조금은 그렇게 된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분께도 권하고 싶다. 오늘 5분, 한 편이면 된다. 좋아하는 것 하나를 정해 놓고 천천히 적어 보시길. 함께 열흘을 걸어 준 50회차 동료들과, 자리를 마련해 준 여유당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글이 말해주는 반주영 작가
반주영 작가는 빵 하나에서 시절 전체를 꺼내 보는 사람 같습니다. 밤식빵을 이야기하다 학교 앞 거리로, 바게트를 이야기하다 친구네 식탁으로, 베이글을 이야기하다 뉴욕의 좁은 빵집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맛을 적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뒤의 사람과 시간을 함께 데려오는 눈이 있는 듯합니다. 김치를 찾던 부모님과 다른 세계를 맛본 자신을 나란히 놓는 대목, 소보로와 크림의 거리만큼이라며 웃음으로 남긴 자리를 보면, 아끼는 마음은 말을 아껴 두는 분 같습니다. 오래되고 평범해서 몰랐던 다정한 것들을 알아보고 싶다는 문장에 이 책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빵 백 개 중 여덟 개를 적었을 뿐인데 벌써 이만큼 왔습니다. 남은 빵들이 어떤 시절을 데려올지, 다음 글이 기다려집니다.
이 글은 반주영 작가가 쓴 8편을 AI가 읽고 쓴 것입니다. 작가님이 직접 쓴 글이 아니라, 글에서 읽힌 인상입니다.
빵은 인간이 만든 과일 — 식빵부터 샌드위치까지, 빵으로 더듬은 시간
Copyright © 반주영, HL1, 2026. Printed in Korea.
이 책에 실린 모든 콘텐츠는 HL1이 저작권자와의 동의에 따라 발행한 것이므로 인용하시거나 참고하실 경우 반드시 본사의 허락을 받으셔야 합니다.
이 책의 본문 8편은 저자가 직접 썼습니다.
들어가는 글과 나가는 글, 「글이 말해주는 작가」는 저자의 글을 바탕으로 AI가 쓰고 저자와 편집부가 다듬었습니다.
이 책은 하루 5분 글쓰기에서 시작됐습니다
‘여유당’에는 매일 아침 글감이 도착합니다.
다음 책의 주인공은 당신일지도 몰라요.
write, share, enjoy!
반주영 · 십나오 여유당 · 시즌 6 50회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