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 49회차 7일차
식혜
한밤 중에 전기 보온 밥솥을 열어본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달큰한 향이 코로 들어온다. 밥 알 몇 개가 동동 떠올랐다. 새벽되면 아빠가 스텐레스 찜통에 부어서 끌여 주실 거다. 빨리 단술이 되면 좋겠다. 경상남도에서는 식혜를 단술이라고 불렀다. 우리집 단술과 다른 집 식혜는 달랐다. 아침에 한 소끔 끓여낸 단술은 식혀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국자로 몇 번 저은 다음 스텐레스 대접에 단술을 두 세 국자 퍼 담았다. 남들 안 볼 때 밥알은 빼고, 단술 물만 퍼서 마시곤 했다. 아빠한테 단술할 때 밥은 빼고 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커서 직접 만들어 먹었다. 밥은 반만 넣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단술 맛과 좀 다르다. 적합한 배율로 만들어야 단술이 단술같아진다. 단술은 바로 먹을 수 없다. 밥을 해야 하고, 엿기름을 넣고 달여야 하고, 한 번 더 끓여서, 다시 식혀서 냉장고에 넣었다가 먹어야 제맛이다. 살얼음까지 동동 뜨면 최고다. 글도 그렇다. 책은 뚝딱하고 나오지 않는다. 글감을 모아야 하고, 목차대로 글을 채우고 달여야 한다. 퇴고하면서 거품은 걷어내고 맑은 글만 남는다. 편집자가 한 번 더 끓여낸 다음 책이라는 출판물이 나온다. 적합한 분량으로 시원하게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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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 십나오 여유당 · 시즌 6 49회차